양극화 해소 – 틀을 바꾸자

국가간 또는 국내적인 부의 격차를 의미하는 양극화(polarization)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세계화, 급격한 기술의 발전, 경제적 민주주의의 지체 등 그 원인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진단과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양극화 원인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분석이 있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지속된 소득격차와 분배구조의 악화가 양극화를 심화시켜 왔다는 점에는 대부분의 견해가 일치한다. IMF 이후 대규모 구조조정을 경험한 기업들의 투자 및 고용의 축소와 단기 수익성을 추구하는 경영의 변화는 지속적인 노동시장 유연화를 가져왔으며, 이는 노동의 불안정성 증대, 근로조건 악화, 실질임금의 하락을 가져왔다. 현재 약 800만명 전체 노동시장의 55%까지 늘어난 비정규직과 이들에 대한 임금, 근로조건 및 사회보험 적용에서의 유례없는 차별은 우리사회에 근로빈곤(working poor)이라고 하는 새로운 빈곤의 유형을 구조화 시켰다. 전체 임금 노동자 4명중의 1명이 중간임금의 2/3(시급 약 4,100원) 이하의 저임금 상태에 놓여있다는 최근의 연구결과는 근로빈곤의 규모와 실태 그리고 심각성을 보여준다.

이 같은 원인들이 빚어낸 사회적 위기는 총체적이며 심각하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한 달 가구소득이 최저생계비(월 113만 6천원)에 미치지 못하는 빈곤층은 약 500만 명, 최저생계비 120% 이하의 차상위 계층은 700만 명으로 전 인구의 15% 가량이 빈곤상태에 있으며, 통계청은 지난해 1/4분기 중 최상하위 계층간 소득격차가 18배 이상이라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상대적 빈곤의 정도를 나타내는 가구의 상대 빈곤율은 연구에 따라 편차를 보이나 대체로 가처분 소득을 기준으로 전체가구 15% 안팎이 중위소득의 50%에 미치지 못한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상황이 이처럼 심각한 만큼, 정부는 그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양극화해소’와 ‘동반성장’이라는 구호아래 당면한 경제사회적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2년 반 동안의 참여정부의 실제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운용은 그와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출자총액제한제도, 집단소송제 등 기업의 경영투명성 강화를 위한 기본적 개혁조치들은 후퇴되거나 유예되었으며, 과거분식회계 감리면제, 금융산업업법 개정 논란 등 재벌 중심적 반개혁 조치는 강화되었다. 각종 개발정책 남발로 인한 전국적인 토지, 주택가격의 상승은 과거 개발독재 시절의 성장지상주의를 방불케 하며, 수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나온 8.31 부동산 대책은 아직 그 성공가능성이 미지수다. 사회보장제도의 개혁, 복지재정 확대는 ‘사회정책의 패러다임적 전환’과는 거리가 먼 선별적, 잔여적 한계를 답습하고 있으며, 오히려 의료, 교육, 보육 등 기본적인 사회서비스 영역의 신자유주의적인 기조가 강화되고 있다.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를 위한 선결과제인 비정규보호 입법은 2년여를 표류한 끝에 실효성은 물론 부작용마저 의심되는 형태로 국회에서 강행처리 되었으며, ‘일을 통한 빈곤탈출’이라는 거창한 표어 아래 진행되는 근로빈곤 대책은 최저임금 현실화와 같은 정공법은 도외시 한 채 EITC의 도입처럼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강화시킬 수 있는 주변적 대책에 머물고 있다.

정부는 연초 대통령 신년연설에서 양극화해소를 국정의 중심과제로 제시하고 사회안전망 확충과 일자리 창출을 통해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정부가 늦게나마 양극화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해 사회안전망의 정책대상을 넓히고 일자리 창출에 나서겠다는 점은 다행이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양극화 해소 대책에는 여전히 당면한 문제의 핵심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불평등 해소 방안이 빠져있다. 전체 노동자의 60%가 비정규직이고 이로 인한 가계 소득의 감소가 양극화의 핵심원인임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구조적 원인을 해소할 마땅한 방안 없이 사회안전망 확충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사후대책을 중심으로 문제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을 비켜난 대책은 양극화의 문제를 단지 빈곤층의 문제로 제한적으로 바라보거나,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는 단순한 성장논리로 치환될 위험성이 매우 높다.

당면한 양극화 현상이 일시적이거나 특정부문에 국한된 것이 아니듯, 그 해법 또한 부분적 조치가 아닌 근본적 틀을 바꾸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우선적인 것은 신자유주의와 성장지상주의가 기묘하게 결합된 경제정책의 일방적인 기조와 흐름을 바꾸는 것이다. 당면한 양극화 현상은 경제발전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치와 이해의 충돌에 개입하고 타협, 조정하는 필연적 국가기능, 정치기능을 포기하고 시장에 모든 것을 내 맡김으로써 나타나는 결과이다. 더욱이 최소한의 준법성과 투명성조차 담보하지 못한 한국적 조건의 시장에서 그 결과는 승자와 패자를 뚜렷이 가르고 그들 간의 극단적인 격차를 부르는 약육강식으로 나타날 뿐이다. 경제의 시장의존성이 당분간은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최소한 균형이라도 찾아야 하며 이는 노동정책, 복지정책, 조세정책 등 사회정책의 확대와 강화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다음으로는 경제의 민주화 구체적으로는 경제적 의사결정에 있어서 민주성의 확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배제적인 정책의 일방적 기조를 바꿔야 한다. 노동을 배제한 한 사회의 경제적 의사결정 또는 경제의 민주주의 실현이 가능하지 않듯, 노동의 주체성을 배제한 양극화 해소와 동반성장이란 허상의 구호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이 같은 조건들에 기반을 둔 통합적 발전전략이 필요하다. 사회 통합적 개혁과 발전을 위해서는 단순히 시장논리에 맡길 수 없는 경제사회 주체들 간의 가치와 이해충돌의 조정이 필요하며, 이른바 사회적 대화와 사회협약은 그런 점에서 유의미한 전제이자 구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누적된 시점에서 사회적 대화는 불가능하며 정부가 그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그것은 노동․사회정책 영역에서 분명한 태도변화에 다름 아닐 것이다.

글.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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