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 – 패러다임의 변화가 시급하다

노사관계의 환경변화

최근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극심한 경기침체로 인한 실업의 증가, 취업자 감소, 비정규직의 확산 등 각종 지표가 여전히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이 노동시장의 환경이 악화된 근본적인 원인을 다음의 두 가지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세계경제환경의 변화이다. 21세기에 와서 정보화와 운송수단의 급속한 발달에 의해 빠르게 진전되고 있는 세계화, 개방화는 과거의 국내시장ㆍ지역시장 내에서의 제한적인 경쟁을 세계 단일시장에서의 무한경쟁으로 전환시켜 세계일류만이 생존ㆍ번영할 수 있을 정도로 경쟁을 격화시켰다. 그리고 현재와 같은 지식ㆍ정보화시대에서는 종래의 자본, 노동 등 유형자본으로부터 무형의 지식자산(intangible intellectual capital)과 혁신능력으로 국가의 경쟁력, 기업의 생산성, 노동시장에서 개인의 지위를 결정짓는 원천이 변화되어 고기술산업, 정보통신, 전문서비스 산업 등과 같은 지식집약산업의 비중이 커지게 된다. 또한 고도성장의 단계를 지난 우리 경제는 경제성장률이 선진산업국가의 경우와 같이 연평균 5% 내외에 머무르는 저성장 성숙경제로 전환되고 산업구조도 자본집약적인 고부가가치 산업 또는 고급 서비스 업종과 같은 지식집약산업 중심으로 변화되어 노동에 대한 수요는 점차 감소될 것이다.
둘째, 경제위기가 한국의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이다. 1997년 말 시작된 경제위기로 인한 IMF관리체제 하의 한국경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외국자본으로부터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강요당한 결과, 대량실업, 비정규직의 확산 등 노동시장 여건을 크게 악화시켰다. 이 가운데서도 경기침체에 따른 성장률 저하와 산업구조 조정에 따른 기업의 퇴출과 인원감축으로 인한 대량실업은 우리 경제가 당면한 최대의 난제로 부각되고 있다. 경제위기는 기업의 구조조정을 불가피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정리해고를 비롯한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대규모 실업사태를 초래하였다.

대량실업의 문제와 함께 노동시장은 상당한 구조적 변화를 겪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고용구조의 악화, 특히 노동시장의 급속한 비정규직화라고 볼 수 있다. 임시직ㆍ일용직ㆍ파트타임ㆍ파견직ㆍ용역직ㆍ가내고용ㆍ특수고용 등 비정규직 노동은 경제위기 이전인 1996년에는 전체 임금노동자의 43.4%를 기록한 이래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유지하여 현재는 50%를 상회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확산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들의 고용이 매우 불안정하고 노동조건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은 대체로 단기고용이며 항상 해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리고 임금수준이 낮을 뿐만 아니라, 각종 수당이나 퇴직금도 없는 경우가 많고 사회보험이나 사내복지의 혜택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가는 사회구성원의 삶의 질 저하를 의미한다.

이와 같은 세계경제환경의 변화와 경제위기 이후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정책에 따라 수많은 노동자들이 실직, 비정규직의 확산으로 인한 고용불안, 임금삭감, 노동강도의 강화 등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이러한 노동시장 여건을 이용한 사업주의 노동통제는 더욱 강화되어 노동조합의 조직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노동조합 조직률의 하락은 노동운동에도 심각한 타격을 안겨주고 있다. 조직률의 하락과 조합원 수의 감소에 따른 노동조합의 교섭력 약화는 임금과 여타 근로조건, 고용의 안정성, 노동관계 법규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노동조합 조직원뿐만 아니라 비노조원을 포함한 전체 노동자에 대한 피해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정부와 사용자의 일방적인 독주를 막고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 노동조합 본연의 임무임을 감안할 때, 노조세력의 약화는 곧 사회 전체의 소득불평등 심화, 경제적 불안정, 중산층의 붕괴 등을 가져오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노사관계의 모색

노사관계의 핵심적 과제는 노동의 인간화와 산업의 민주화이다. 결국 노사관계는 인간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노사양측은 경제 우선 논리에 의하여 서로 마음을 열지 못하고 갈등구조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21세기는 자본과 노동으로 대별되는 산업화의 시대는 아니다. 이제 노사는 대립관계에서 벗어나 생산적이고 민주적이며 인간적인 공동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즉 노사가 공동체가 되어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공동노력을 할 때 삶의 질이 향상되고 기업의 성장도 가능한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들의 최근 노사관계 동향은 노사가 공동체가 되어 상생, 공동번영의 길로 가고 있다. 경쟁력 강화에는 노사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세계적 추세인 것이다.

한편 경제위기의 도래와 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적 흐름은 한국 노사관계의 근본적인 구조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노사관계는 오랜 개발독재 기간을 거치면서 전제적  노동통제 정책에 의하여 인간을 소외시켰고, 자율과 책임의 민주적  노사관계를 앗아가 버려 지금까지 한국의 노사관계는 폐쇄적, 수직적 그리고 대립적인 전근대적 노사관계의 제도와 관행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경제의 세계화와 개방화가 가속화되고 경쟁의 압력도 강화되어 경제의 안정적인 성장도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서 기존의 전근대적 노사관계의 패러다임은 더 이상 유지되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러한 환경변화에 따라 기존의 노사관계를 시대적 상황에 맞는 선진화된 노사관계로 변화시키지 않은 채, 선진국과 경쟁하고 저임금을 앞세운 후발 경쟁국들의 도전을 뿌리치며 경제를 안정적으로 성장시킨다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IMF관리체제라는 초유의 경제위기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강제했고, 이 과정에서 노사관계의 제도와 관행에 큰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에 근거하지 않고 노동계가 소외되어 추진된 구조조정은 실업의 증대와 비정규직의 확산으로 인한 고용불안, 노동조건의 악화를 가져와 노동계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고 있으며, 구조조정 자체도 지지부진하여 사회적·경제적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나타난 이러한 문제점은 사회적 합의주의 방식이 아니라, 노동 배제적이며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중심으로 한 사용자 우위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방식의 결과이다. 노동계의 참여와 지지가 없는 구조조정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면 노사정 3주체가 모두 능동적 주체가 되어 공동체가 파괴 또는 분열되지 않고 사회 구성원 전체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노동자의 경영 참여권을 대폭 강화하여 노사간의 협력과 참여를 진작시키는 제도와 관행의 정착으로 이해될 수 있는 새로운 노사관계의 확립이 시급한 과제이다. 그리고 현재 표류하고 있는 노사정 위원회를 정상화시켜야 한다. 노사정이 대타협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노사정 위원회는 독일이나 네덜란드의 사회적 합의주의(societal corporatism)와 근본적으로는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노사정 위원회는 정부의 일방적 구조조정, 합의사항의 불이행, 사용자의 소극적 태도와 노동계의 불신 등으로 사회적 합의주의를 실현하는 기구로서의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노사정 위원회의 실질적 위상이 강화되어 새로운 노사관계의 정착을 주도해야 한다. 끝으로 정부는 새로운 노사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합리적 규칙을 설정하여 엄정하게 집행하는 대신 노사문제에 대한개입을 최소화하고, 사회 안전망의 확충과 각종 세제의 개혁을 통하여 경제적ㆍ사회적 정의를 실현하여 노사 양측으로부터 신뢰를 확보하는 등 참여와 협력의 노사관계 확립을 위한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김용원(대구참여연대 운영위원장 · 대구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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