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길을 만들고 있다. – 윤종화 前 사무처장

정확하게 21년전, 나는 초짜 대학생으로 6월항쟁속으로 스스르 빠져들었다. 별로 고민할 겨를도 없고 주장과 구호가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독재타도, 호헌철폐!’. 고민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당시 내가 다니던 대학에서는 총장퇴진투쟁으로 그해 4월부터 ‘뜨거워지고’ 있었다. 대학당국에서 경찰, 안기부 등에 활동비(?)를 지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학생들을 분노케 했다. 그 뜨거움이 5월로 이어지고, 몇명이 구속되면서 당시 용어로 ‘동맹휴업’으로 이어졌다. 바야흐로 ‘6월’로 접어든 것이다. 그렇게 나에게 6월은 다가왔고,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 속에서 외치고 뛰고 넘어지면서 몸으로 정치를 배우고, 민주주의를 배웠다. 나는, 우리는, 우리나라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21년이 지난 오늘 나는 아이들과 아내와 함께 그때 그자리에 섰다. 달라진 건 그때는 학생신분이고 지금은 시민이라는 것 뿐. 초등학교 2학년인 큰 놈은 몇년전 탄핵촛불집회에 참가한 경험이 있어서 인지, 진지하게 참가한다. 친구들끼리 대통령이 나쁘다는 대화를 한단다. . 좋아하는 닌텐도빵 값이 오르는 것도 대통령 때문이란다. 웃기는 일이고 안타까운 모습이다.

왜, 우리는 20년이 지난 지금에 또다시 거대한 촛불을 만들고 있는가? 결론은 ‘민주주의의 문제’이고 ‘길을 만드는 과정’이다. 민주주의의 진보이자 운동의 진보가 지금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87년의 거리, 넥타이부대, 대학생, 화염병, 쇠파이, 국본, 최류탄, 사과탄, 지랄탄, 공안대책기구가 거대한 민주화의 시작이라면 지금의 촛불, 난장, 토론, 표현, 중고생, 가족들, 물대포, 명박산성이 민주주의의 진보, 운동의 진보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임계점에 달하면 다른 그 무엇으로 변화듯이.

경제학 교수 한 분, 기자 한 분, 시민운동가 한 분 그리고 나… 자리에 않자마자 토론이 뜨겁다. 초구는 교수님이 땄다. ‘촛불’을 분석하면서 어떠한 작위적인 행위도 촛불에는 치명적이라는 주장을 펼치신다. 참석자들 모두 거의 비슷한 분석을 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시민운동의 위상과 관련된 부분, 현재 상황은 시민운동이 그동안 가졌던 지위를 다른 그 무엇에 넘겨주거나 시민운동이 해체되는 상황일 수도 있다는 주장과 현재의 시민운동 외의 새로운 시민운동이 태동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현재의 시민운동의 급격한 해체가 그 선결조건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두고 논쟁이 이어졌다.

왜 이러한 논쟁이 제기되고 또한 필요한가. 현재 촛불은 외형상 쇠고기협상 문제, 교육문제, 정부의 무능력과 정권의 거짓말 등이지만, 내용에서는 대의제민주주의의 한계와 직접민주주의를 통한 주권실현, 거리정치가 대의정치를 압도, 기성권위에 대한 저항등이 깔려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문제는 여러곳에서 말하고 있지만, 권위에 대한 저항의 성격은 거의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위 대화의 쟁점이 권위에 대한 저항이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차이이다. 아직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촛불은 시민운동도 하나의 권위라고 보는 듯하다.(생활과 현장에서 진보적이지 않는 운동에 대한 경고라고도 보여진다.) 촛불에 참가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는 노동운동, 시민운동, 사회운동, 주민운동, 환경운동, 여성운동 등의 회원들이 있다. 그들 스스로 새로움을 창출하고 있다. 서로 거리에서 소통하고 토론하면서 운동의 진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6월 10일 저녁, 대구 한일로의 촛불문화제를 마치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변호사 몇 분, 노동운동가 몇 분들과 생맥주를 한 잔 했다. 6. 10 이후에 대해서 걱정한다. 운동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한다. 지도부가 있어야 한다고 직접적으로는 얘기하지 않았지만, 그와 비슷한 주장으로 느껴진다. 과연 이런 것들이 필요한가. 아니다. 촛불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만들어 가면 된다. 시민운동이든, 사회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깃발을 중심으로 모여라가 아니라 그 깃발들이 한 사람의 시민으로 촛불이 되면 되는 것이다. 방향? 촛불들이 스스로 불을 끄면 꺼지는 것이고, 촛불들이 계속 불을 밝히면 빛나는 것이다. 이것이 운동이고, 운동의 진보인 것이다. 이 과정에 민주주의가 풍부해지고 진보가 풍부해질 수 있다.

화염병보다 쇠파이프보다 촛불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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