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의 문화유산-평양에서 온 국보들

남북 분단이후 처음으로 남과 북의 박물관 교류 전시가 이루어졌다. 특별전「북녘의 문화유산-평양에서 온 국보들」은 국립중앙박물관과 평양 조선중앙력사박물관의 첫 번째 교류 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전시회이다. 이 전시회에는 북한이 자랑하는 중요 문화재 90점이 출품되었으며, 그중에는 국보 50점과 준국보 11점이 포함되어 있다. 대구 국립박물관에서도 전시 중이니 꼭 가보기를 권한다. 전시는 한반도에서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구석기와 청동기 시대의「상원 검은모루 출토 구석기」와「신암리 출토 청동칼」, 우리나라 최고의 악기인「서포항 출토 뼈피리」, 고구려의 중요한 금석문인「고구려 평양성 명문석」등의 고고 역사품과 빼어난 안견의 수묵그림「용」, 이인상의「나무아래서」, 최북의「한여름」, 신윤복의「소나무와 매」, 김홍도의 빼어난 기술을 보여주는 「호피도」, 남계우의 나비그림, 장승업의「게」, 안중식의「수선과 모란」, 이상범의「봄」등 미술품들이 함께 선보이고 있다. 미술품 중에도 발길을 뗄 수 없는 것들이 많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작품의 내용보다도 우리나라 근대화단의 대표작가인 안중식과 이상범의 작품이 북한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었다는 거다. 근대화단의 작가들을 국보의 대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상당히 놀랐다. 물론 작품들도 수작 중의 수작이다.

전시장 입구에는 북한의 역사관과 업적을 짤막하게 소개해 주고 있다; ‘유물사관에 입각한 역사해석, … (이에 따라서) 고고학 발굴조사에 심혈을 기울이게 되었고, … (이를 통해) 일본인 학자들에 이루어진 연구 성과를 전면적으로 수정하게 되었으며, 우리 민족의 고유성과 영구성을 확인시켜주었다.’고. 북한의 입장과 성과를 소개하면서, 선사시대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유물과 미술품을 전시해 두었다. 북녘에서 발굴된 고고학 자료라고 하니까 약간 흥분되면서, 고등학교 때 ‘상원 검은모루, 굴포리’ 어쩌구저쩌구… 너무도 지루하게 여기며 억지로 암기했던 기억이 떠올라 슬쩍 웃음이 지나가기도 했다. 왜 그렇게도 지루하고 재미없었는지… 아마도 직접 눈으로 보면서 공부를 했더라면 조금 낫지 않았을까, 남 탓으로 돌려본다. 아무튼, 90cm나 되는 빗살무니 토기 앞에서는 크기에 우선 놀라고 그 추상적인 조형감과 토질의 느낌이 아주 잘 어우러지면서 출토된 시기를 잊게 만들었다. 이것은 신석기 시대 유물이다! 조금 지나다 보니 최초의 악기라고 하는 뼈피리가 놓여있다. 기원전 2000년경에 독주회는 없었을 것이고, 아마도 제사용품으로 보인다. 길이는 20cm가 안되는데, 조류(새)의 다리를 가공한 것으로 추정한단다. 아니 새의 다리를 가공했다니… 무슨 새이길래 다리로 관악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일까… 아주 귀여운 것이 가공술도 뛰어났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악기라고. 그러나 북녘에서 보존하고 있는 유물들이라고 하니 아무래도 관심은 고구려와 발해에 갈 수 밖에 없었다. 고구려야 고분벽화 때문에 이래저래 자료를 들춰보곤 했지만, 발해는 정말이지 내게 너무도 막연한 우리 역사의 한편이었다. ‘우리역사’라고 말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역사시간에 발해는 그냥 지도상의 문자 그 이상 의미가 없었다. 그때는 당연히 우리나라가 아닌 줄 알았다. 졸업을 하고 한참 뒤에야 통일신라시대와 발해를 두고 남북국이라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아니, 언제는 빠져 있다가 언제는 들어오고… 어이없는 일이다. 그래서 발걸음은 바쁘게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을 쫒아 들어갔다. 고구려는 안악 고분군에서 익히 보아왔던 삼족오(세발의 까마귀)의 문양이 베개 마구리 장식에 사용되어 금속공예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고, 오랜 세월 무엇인가 지켜왔을 돌 사자상이 남녘의 관객들을 바라고보 있다. 돌 사자상은 평양성 북쪽에서 발굴된 것이라고 하는데, 익히 알고 있는 고구려의 기상이나 웅비함 보다는 세월에 쓸리기는 했으나 아주 조용한 기품이 느껴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발해유물은 <치미> 하나밖에 없었다. 중국 흑룡강성에서 발굴되었다는 치미는 기와로 만들어진 치미를 보아왔던 내게 아주 낯선 것이었다. 발해치미는 녹색유약을 발라 아주 세련되고 화려하면서도 힘 있고 강건해 보였다. 한 점으로 발해의 전모를 상상하기는 어려웠지만, 아주 세련되고 힘 있는 문화를 향유하지 않았을까…하는 기대감만을 남겨놓고 자리를 떴다. 고려시대 화려하고 세련된 불교예술품들, 공예품들을 지나 회화가 전시된 곳에서는 눈이 아주 시원해진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화려한 고려의 귀족문화는 어떻게 평가되고 기술되었을까도 궁금해진다.
안평대군의 꿈을 그림으로 남긴 안견의 용그림은 작은 그림이지만 수묵의 기품과 함께, 힘 있는 기상을 보여주고 있고, 특히 시서화 삼절로 일컬어진 이인상의 <나무아래서>는 발길이 절로 멈추게 된다. 낙락장송을 대담하게 그리고 그 아래 머물고 있는 선비의 모습은 저절로 사색의 문을 열어놓는다. 대담한 필치와 과감한 구도 때문에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최북의 <한여름>은 ‘붓으로 먹고 산다’는 뜻의 호 ‘호생관’에 꼭 걸맞게 속시원한 공간구성으로 ‘최산수’답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세칭 ‘남나비’라고도 알려진 남계우의 나비그림은 그 선명함과 세밀함에 생동감이 절로 나고, 너무나 잘 알려진 김홍도는 화원으로서의 기량을 보여주는 <호피도>가 전시되어 있다. <호피도>는 사진기로도 그렇게 세밀하게 표현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외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수작들이 널려있는 알찬 전시이다. 더군다나, 다시 북으로 돌아가면 언제 또 마주할지도 모를 것들이어서, 남다른 애착이 들었다. 대구에서 전시되는 동안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관람을 했으면 좋겠다.

전시를 보고 나오면서 오래 전에 받았던 마음의 충격이 문득 떠올랐다. 언젠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인터뷰에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70년대 백제사를 전공한 분이었는데, 백제사를 연구하고 보니, 학회지에 실을 데도 없고, 당시 역사에 대한 수요가 백제에 대해서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는 거다. 그래서 소위 전공을 하고도 아무데도 쓸모가 없어서 아주 큰 좌절과 고충을 겪었다는 내용이었다. 역사란 누군가 왜곡을 할지언정, 이렇게 여지를 전혀 남기지 않고 차단될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기가 막혀 잠시 멍하게 있었다. 이번 전시처럼 하나하나 차단의 문이 열리고, 우리가 잊었던 혹은 잃어버렸던 편린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조각을 맞추어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며 전시 관람을 다시 한번 강추한다.

글. 남인숙 (편집위원 namis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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